고작해야 2년전이지만 과거 일들을 정리하다보니 문득 "역사"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데, 이과예찬이란 이름이 "스터디그룹"이라는 형태를 띄기 시작한 것은 사실상 2007년이라고 보면 되겠다. 사실 이과예찬이란 이름은 원래 명백한 방향성과 미래에 대한 열띤 희망 및 세상에 대한 도전정신 등등을 갖고 이얍!! 빠세!! 하고 만든것이 아니라, 그 이전의 소모임에서 이루어진 프로젝트 중 일부였다. 그 소모임 역시 스터디그룹이었는데, 온라인에 떠돌던 양질의 해외판 물리/화학/컴퓨터 자료들을 번역하고 공유하고 또 그를 같이 연구하는 형태의 모임이었지. 팔콤사의 영웅전설 시리즈 같은 느낌? …부연설명으로 쓰기엔 너무 매니악한 부연설명이군 (─) 
  

로고고 사이트고 뭐고 그딴거 없었다. 그냥 이과예찬'-^ (─) 참고로 위 자료는 2009년에 재작업한 열역학 노트


어찌보면 난 이때부터 국내 웹에 대한 회의를 느낀걸지도 모른다. 인터넷 선진국!! 같은 헬리코박터 냄새나는 말은 집어치우더라도, "인터넷 강의"가 전세계에서 가장 활성화된 국가라는 곳이 제대로된 공개 교재하나가 딱히 없다는 사실이 말이지, 영 짜증이 나더라고. 반면 구글에 몇 마디만 대충 검색해도 물밀듯 쏟아져나오는 그 양질의 공개자료들은……. 비록 영어라 반정도 탐이 억-_-압 당하더라도, 정말 탐나는 자료들이 많았으니까. (얼마전 물리수업 당시에는 http://cnx.org 의 K-12 physics 를 기초로 진행하기도 했다.)

어찌됬든,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난 스터디그룹을 통한 공부형태에 확신을 얻었고, 이를 학교에서도 진행하고자 해서 "야학(夜學)"이란 이름으로 이런저런 프로젝트를 포함한 야심찬 교내 스터디그룹을 만들었다, 만……. -_-;

사이트가 참 새까맸었다. 분명 스크린샷을 찍었는데 어디갔징(─) 위는 당시 헤더이미지.


……뭐, 그랬던 것이다. 이전 실업계 녀석들과 진행한 AM08:40(Active Motion 0840. 한 회당 30문제, 총 28회의 모의고사를 하루에 7회씩 4일간 풀어제낀 정신나간 프로젝트. 무려 4번이나 진행했다-_-;;)라던지, 과고생들과 진행했던 일련의 프로젝트는 서로의 needs가 맞았던 반면, 이게 일반고라는건 특성을 탈 수 밖에 없었던 것. "정보갈취실" 이라는 이름으로 각자 학원 또는 사이트에서 유료로 얻은 자료들을 공유하는 상당히 이름부터 불법스러운 제-_-목의 게시판을 중심삼으려 했지만, 정보를 얻을데가 없던 실업계생이라던지 귀하고 새롭고 어려운 정보에 대한 갈-_-구가 있던 변-_-태 같은 과고생들과는 달리 정보얻을데도 많고, 그에 대한 갈구역시 모자란 일반고에서 자발적인 참여를 구하기가 어려웠던 것.

자, 여기까지 6줄짜리 변명 (─)

이 때 느낀 "멤버간 자발성"의 중요함은 이후 스터디그룹의 방향에 큰 영향을 끼쳤고, 이과예찬이라는 녀석의 탄생에 마찬가지로 큰 영향을 끼쳤다. 야학 이후에 만들어진 스터디그룹은 "이과예찬" 이란 이름을 걸고 주요 수험생 사이트와 전국 특목고, 실업계의 인맥을 통해 광고가 이루어졌고 이전 소모임에서의 "이과예찬"이라는 이름의 소 프로젝트는 "이과예찬 본-_-부"라는 이름으로 "스터디그룹 이과예찬"과 독단의 길을 걷게됬다.

이과예찬 (-)기. 이때도 로고는 뭐 식료품인줄 알았다 '-^ (─)


이후 "이과예찬 본부"는 이과예찬에서 제작되는 모든 교재와 프로젝트를 베타테스팅-_-하고, 먼저 시행하는 역할을 했고 "스터디그룹 이과예찬"은 그 뒤를 잇는 형태로 진행됬는데, 여기서 많은 마찰이 생겼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계획되면 그걸 모두 생체실험 당하는 역할이었던 이과예찬 본부는, 그런 일련의 베타테스팅이 끝나고 시행되는 프로젝트가 오히려 본부보다 결과로 보나 과정으로 보나 미진했다는 것이 굉장히 불쾌한 일이었으니까.

그러던 와중에 실제 순수한 온라인 모집을 통해 실시되었던  "스터디그룹 이과예찬"의 1기는  

일반적인 인터넷 스터디그룹의 생리현상, 모였다! 계획표짜서 올리자! 아 귀찮다! 나도! 망했당 ㅎㅎ (…) 을 뛰어넘을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없을까 좌로우로 거침없이 굴러다니다가 생각해낸 대안 -이과예찬 1기 모집문 중


을 표방했으나 결국 그 생리현상을 고스란히 따라가서 폭발해 버렸다. (엄밀히 말하자면 극소수 인원의 이기적인 행동 덕분이었지만) 그 덕분에 본부 내에서는 "스터디그룹 이과예찬"이라는 것의 존재 자체를 계속 부정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직전. 그러니까 가장 입시에 집중해야할 시기라는걸 서로 알고있었기도 하고, 또 그룹 내에서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다고 판단된 우리들은 내가 진행하는 프로젝트 위주의 "스터디그룹 이과예찬"을 따라올 사람들만 남고 일시적 해체를 감행했다. 그리고 나와 남은 몇몇 인원들은 폭발해버린 1기를 밀-_-어버리고, "진짜 1기"를 자칭했다. 위의 (-)기는 요런데서 기인한다. (…)

진짜 1기 선언 이후 제작한 첫 공식로고. 되게 촌스러운 기억이었는데 막상보니 지금보다 나은느낌? -_-;;


이러한 복잡한 과정 이후 남은 본부인원과 온라인 회원 중 폭발 후 까지 끝까지 따라와준 인원, 그리고 오프라인에서 친목이 있는 실업계생들, 그 해 수능을 보던 원래 회원들 및 교내에서의 인원을 통합해서 최종적인 "스터디그룹 이과예찬"이 탄생했다. 공식적인 "1기"의 구분을 명확히 하고, 정식적으로 "2기"라는 길을 밟기 시작한 것이 이때[각주:1]다. 원래 이과과목을 말 그대로 "연구"하던 스터디그룹 이과예찬이었지만, 그 해 수능을 치루는 회원들이 많았기에 스터디그룹 개설 후 부터 바로 수능에 관련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정말 1달정도밖에 남지않았던 상황! 하지만 자발적인 참여와 높은 프로젝트, 강의 이행률 덕분에 "전설"이라고 불릴만한 결과가 많이 나와서 정말 기뻤다. AM0840을 뛰어넘은 AM1040같은 정신나간 프로젝트부터, 같이 밤을 새며 단어 1000개씩, 외워지든 안외워지든 매일 3시간씩 같이 연상되는 그림 그리며 외우는 사실상 미친 짓! …까지. :)  

2기 진행시 제작된 교재들 중 일부. 대부분이 소실되서 아쉽다. 특히 AM0840이랑 AM1040-_-


……그랬었지. 응. 그랬던 것이다. 2007년의 이과예찬은 정말 바쁘고 너무 바쁘고 또 힘들어서 기록물도 거의 안남아있고, 끝나서 얼마나 열심히 놀았는지 같이 찍은 사진 한 장 제대로 남은 것이 없다. 되든 안되든 모여서 강의라는 이름으로, 토론이라는 이름으로 죽어라 싸웠고 서로 미쳤다고 욕하면서 밤새 단어를 쓰고 그리고 외우고. 그 끔찍하던 새벽엔 MSN메신저에 있는 헥사가 왜 그렇게 재밌던지!

당시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당시 내 플래너에 저렇게 고스란히 적…그려져있다 -_-;;


그 말그대로 토나오고 힘들었던 순간들이 하나하나 기억나고, 또 그 급박함과 초조함이 하나하나 왠지 꽤나 생생하게 추억으로 남아있다는건……. 참 재밌다고 인정할 수 없네:)

수능을 본 인원이 주축을 이뤘기 때문에 수능 이후 이과예찬 2기는 자연스럽게 해체됬고, "아직도 못다한 이야기"를 강의하기까지, 휴식기간에 들어갔다. 그렇게 2007년의 이과예찬은 문을 닫았다. 비로소 "스터디그룹 이과예찬"이란 이름을 확립한 뒤 그 짧은 시간, 수많은 이야기와 더불어 "미쳐야 미친다! 미칠 수 있다면, 사람은 반드시 자기 의지대로 된다!" 라는 소중한 교훈을 남긴 채. 

이 4줄을 만들어낸 소중한 시간이 바로 저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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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수능에 대한 대승(─)의 영향이라면 영향이고, 조기졸업 실-_-패로 인하야 내가 자연스레 고3 반열에 들어선 덕분에 이 후 이과예찬은 수능을 대비하는 스터디그룹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난 내 인생 최대의 실수인 모 스터디 윈터스쿨에 들어가게 되는데……는 다른이야기. (─)


  1. 사실 3기 진행시에도 굉장히 헷갈렸다. 그래서 3기 글들을 보면 완전히 뒤죽박죽……-_-; [본문으로]